중국, 일본 등지에서 특정 시점부터 가산하여 년수를 계산하기 위한 특정 호칭. 「大化」「昭和」 등. 일반적으로 천황이 연호를 제정하는 특권을 갖고 있기에 이에 따르곤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개인적인 연호(私年号), 위조 연호(偽年号)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메이지(明治) 이전에는 같은 천황이 몇 번이고 연호를 개정하는 일이 많았으나, 메이지 이후에는 같은 천황의 경우 하나의 연호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一世一元). 年号라고도 함. 元号法 참고.
*皇室典範(明治二二年)〔1889〕一二条「践祚の後元号を建て一世の間に再び改めざること明治元年の定制に従ふ」
*登極令(明治四二年)〔1909〕二条「天皇践祚の後は、直に元号を改む」
*漢書‐李尋伝「今陛下久疾、変異屡数、天所以譴告人也、宜急改元易号」
주1) 남북조 시대 : 일본의 중세, 조정의 황통이 남조(大覚寺統)와 북조(持明院統)로 분열하여 대립했던 시대. 양 왕조의 대립은, 足利尊氏가 교토에서持明院統의 光明天皇을 확립하고, 大覚寺統(남조)의 後醍醐天皇가 요시노(吉野)로 이동한 建武三=延元元年(1336)부터 남조의 後亀山天皇가 교토로 귀환하여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에 의해 전국통일이 완성된 明徳三=元中九年(1392)까지 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분열직전의 켄무의 중흥(建武の中興, 1333~36)을 포함하여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의 시대 중반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양 왕조는 각각 다른 연호를 사용했다. 전국적인 규모로 전개된 사회적 동란은 장원제(荘園制)와 이에 기반한 쿠우케(公家社寺)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고, 영토에 있어서 무로마치 막부의 지배체제가 확립하는 한편, 촌락 내부의 농민자치 조직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까지 쿠우케중심의 폐쇠적인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교양오락의 일부가 서민에 널리 퍼지게 되어 렌가(連歌)・노가쿠(能楽)・차노유(茶の湯) 등 문화사(文化史)에 있어서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기도 했다.
주2) 연호 : 연호는 일본어로【元号げん‐ごう[:ガウ]】
참고문헌-『일본국어대사전』(제2판), 일본국어대사전편찬위원회편, 소학관, 2001 / 번역 : 김유영